2009년 12월 05일
[펌] 하는 짓은 트루먼인데 자기가 루즈벨트라고 믿는 어느 분에 대하여....
MB는 F. D. 루즈벨트를 꿈꾸며 트루먼을 행한다
한창 미국이 대공황을 겪고 있던 1933년에, 1차-2차 세계대전동안 희대의 대통령이 미국에 나왔는데, 그사람이 바로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F. D. Roosevelt, 약칭 FDR) 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뉴딜 이라는 것을 공표했는데, 뉴딜의 골자는 아담 스미스의 자유 방임주의 (Laissez-faire)를 무너뜨리고 케인스 학파의 정책에 가까웠다. 이는 루즈벨트가 기용한 "브레인 트러스트"의 영향이 큰데, 브레인 트러스트는 금융/경제 각각 분야의 저명한 인물로 구성된 고문관 이었다. 루즈벨트가 뉴딜을 통해 하려는것은 "구제, 부흥 그리고 개혁"이었는데, 4 가지를 골자로 한다.
1. 은행 안정
2. 산업 부흥
3. 빈민 구제 및 민생 안정
그는 긴급 금융법으로 불량 은행을 쳐내고, 우량은행만 살려두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 공황 사건과 희대의 은행 털이범 존 딜린져 덕분이었다. 경제 공황에 의해, 자신의 예치금이 불안해진 시민들이 계좌의 돈을 다 빼가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하도 많다보니 은행의 현금 보유량이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정도 가능했어야하지만, 거품 경제로 인해 자산보다 실제 현금 보유량이 적었던 은행들, 특히 소규모 은행들은 돈을 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문을 닫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이 은행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한창이었을 때였던 것이다. 또한 존 딜린져라는 범죄자는 미국을 가로지르며 은행을 털었는데, 그는 신속하고 정확한 은행털이로 잡혀들어가지 않았다. 존 딜린져를 무서워한 나머지, 뉴욕 연방은행이 존 딜린져가 털러 올지 모른다는 공포와 은행 공황 때문에 1933년 3월 5일, 그러니까 루즈벨트 취임 바로 다음날 휴업해버렸다.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얼굴에 똥칠한 은행가들이기에, FDR은 은행에게 이미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취임연사에서도 은행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FDR은 과감하게 얄짤없는 은행 개혁을 감행했고, 대중은 그것을 지지했다.
산업 부흥은 산업 부흥법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약칭 NIRA)을 통해 실행 되었다. NIRA는 지금까지 해오던 미친듯한 기업간의 가격 경쟁을 멈추고, 최저가격과 생산량 제한 및 할당을 골자로 했다. 이는 자본가들을 억눌러서 노동자의 권익을 올리려던 시도였다.그리고 블랙 먼데이의 비극을 막기위해 증권 거래 위원회를 설립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증권 거래 위원회의 위원장은 조셉 P. 케네디, 후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산업체간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상당히 위험수를 두었는데, 그것은 안티트러스트 법률을 일시 중지시켰던 것이다. FDR은 이미 NIRA를 통해 기업들을 규제하고 있는데, 안티트러스트 법률은 NIRA를 통한 기업 규제에 방해가 될것이라 보고 경제가 좋아지기까지 일시 정지 시켰던 것이다. 물론 2차 뉴딜때 NIRA는 개정된다. 1935년 2차 뉴딜때는 NIRA는 비합법적이라는 연방재판의 판결에 의해 위헌이라 선고를 받게되고, 루즈벨트는 이에 대안으로 전국노동관계법 (National Labor Relation Act; 혹자는 Wagner Act[와그너 법]이라고도 부른다)을 만든다. 이 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조를 만들 권리와 파업할 권리를 보호했다. 또한 사회보장 제도를 실행함으로서, 실업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빈민구제는 확실한 정부 개입과 연방 정부의 돈을 쏟아부음으로서 구제를 시도했다. 일단은 "노변한담"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루즈벨트는 직접적으로 정부가 경제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계획하는지 직접 알려줌으로서 민심을 안정 시켰다. 또한 공공사업관리부 (Public Works Administration)를 통해 실직자들을 구제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33억달러가 소비 되었다. 또한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 (Tennessee Valley Authority: TVA)를 설립하고, 죽어가는 테네시 강 유역을 살리고자 하였다. 테네시강 유역의 농부들에게 근대화된 장비를 통해 농업을 되살리려 했고, 특히 댐이나 발전소를 설립하여 농업의 기계화를 꾀하였다. 당시 테네시강 유역은 하도 낙후되어서 전기 공급이 없는 지역이 전기 공급이 있는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TVA를 통해 루즈벨트는 미국 중부, 특히 중서부를 되살리려 했는데, 이는 중서부가 진공화가 되어가고 있었기 떄문이다. 불량은행덕에 많은 미국 농부들은 타격을 입거나 땅을 압류당했고, 이로 인해 일을 구하러 도심지, 특히 서부 캘리포니아로 모든 농업 인구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도 잘 묘사되어있다. 테네시 강 유역을 발전 시킴으로서 지역 경제를 되살린 후, 인근 지역도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을 노렸으며, 낙후된 미국 중부에 발전소를 지음으로서 일자리 창출 및 도시와 농업의 근대화를 이루려 했다. TVA를 통해 주변 지역, 궁극적으로는 미 중부의 경제를 살리려 한것이다.또한 밀주법을 없애서, 술을 유통시켜서 나온 세금으로 연방정부의 돈을 늘려 빈민구제에 투자했다.
그리고 MB는 FDR의 뉴딜을 복제했다.
MB는 금융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은행 안정을 위해 금융 산업 규제를 풀겠다라고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원회로 바뀌면서 정책 기능과 집행 기능을 분리하여 제한을 둔 꼴이 되버렸다. 또한 이제 기획재정부는 금감위에 대한 재량이 없어지면서, 자유경제가 되버렸다. FDR 처럼 불량 은행을 없애고, 채무를 없애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니들끼리 잘 놀아라"라고 해버린 것이다. MB의 이 정책은 구닥다리 아담 스미스의 자유경제주의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의 헛점은, 외국개입에 있다. 불량 채권이나 빚을 제거하기 위하여, 은행은 가지고 잇는 자산이란 자산은 다 팔아서 자신을 구제해야하는데, 외국 자본이 들어와 국내 은행을 사버린다해도 이제 막을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악성채권같은 암같은 존재들이 은행끼리 돌리게 되어서,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발전할수도 있다는 점이 있다. FDR과는 완전 반대 노선이다.
MB는 산업부흥을 꾀했다.
아니, 대기업 부흥만을 꾀하였다. MB의 정책은 무조건 부자들에게 퍼주는 정책인데, 이것은 오히려 카르텔이나 모노폴리를 조장할수도 있는 것이다. 덩치큰 기업은 더 쎄지고, 작은 기업은 약해져서 먹힌다. 이로 인해 경제 균형이 무너지고, 가격의 붕괴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FDR은 대기업의 독주를 막기위해 NIRA를 실행하다가, 헌법에 막혀서 와그너 법을 발효시켜 노동자의 위치를 높여 기업을 견제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일타쌍피를 노렸던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집회 반대법과 온갖 법 (MB 악법이라 불리는 법규)들에 의해 규제 받고 있다.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를 죽이는, 열매를 좀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쥐어짜는 어이없는 법이다. 말할것 없이, FDR이 노렸던 기업 억제와 노동자 권익 향상및 민생 안정과는 100광년 정도 거리가 있다.
MB 또한 빈민 구제를 시도했다.
대은하 프로젝트 은하돌파 한나라간 을 이어받은 4대강 프로젝트는 테네시강 유역 발전공사와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다. 하지만 이것또한 걸작인데, 지역민 혹은 지역경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확실하다만, 단거리 적인 창출이다. 지역 경제 부흥을 통해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및 지방의 근대화는, 4대강 프로젝트로 인한 부과 효과로 기대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즉, 루즈벨트의 노림수는 "장기적인 일자리 장출 및 지역 경제 부흥"이었지만 4대강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4대강 정비" 만이 노림수이다. 나머지는 자유경제의 손에 맏겨 알아서 지방경제가 살아나길 기대한다는 말이다. 산업 부흥과 맞물려서 4대강 프로젝트가 카르텔에 의해 독식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역 기업이 참여 하거나, 혹은 지역 기업끼리만의 입찰로 제한하여 하면 모를까, 대 기업이 지역 기업을 먹어치우게 될 기회가 된것이다. 빈민을 구제한다며 빈민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와 사회보장이 아닌 집을 박살내는 일을 하고 있고 (부끄럽게도 이것은 국제적으로 비난받았다), 세금을 더 과하게 매기고 있다. 이젠 서민들의 능률을 올린다고 금주법이나 발효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러면서 MB는 해리 트루먼의 맥카시즘을 도입했다.
맥카시즘을 도입하여, "빨갱이로 몰아세우기" 전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전우회와 전경들을 도입하여 파업과 집회를 다 막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비판또한 미디어법으로 막아 세웠다. 노변담화를 벤치마킹하여 자신도 라디오와 대중 매체를 쓰지만, 그것은 일방적이다. 누구도 비판할수가 없다. 루즈벨트때는 NIRA에 반하는 여론은 묵살되지 않았고, 오히려 헌법 재판을 해서 위헌판결이 나왔고, 루즈벨트는 그것을 수용했다. 대신 와그너 법을 발효했을 뿐이다. TVA또한 규탄을 받았는데, 댐건설과 발전소 건설로 인해 수몰당하거나 쫓겨난 농민들에게 많은 규탄을 받았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이를 수용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자신의 정책으로 조만간 일이 생길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MB는 그러지 않고 있다. 혹시 일자리 챙겨줄 자신이 없어서 일까? "MB께서 다 해주실꺼야"라는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일까.
이 "빨갱이 전법"의 맹점은, 맥카시즘은 상원위원이 추진하고 FBI국장이 지원사격했던 것이라, 제정신 들어간 사람들이 막는 것이 가능했고, 서민의 레벨에서도 재판이나 비판으로 저항이 가능했다. 이러한 저항이 쌓여 맥카시는 상원에서 퇴짜스파르타킥를 맞았고, 제적되었다. 하지만, 빨갱이 아니면 우리편이라는 극단적인 맥카시즘을 쓰는 MB는 답이 없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저항하기에는 너무 거대하다. 또한 그는 맥카시즘에서 썼던 애국보안 심사위원회 (Loyalty-Security Review)도 없다. 다만 블랙리스트와 처벌권한만 있다. 재판없는 재판이며, 처단인것이다. 그에게 브레이크를 잡을 만한 기구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미쳐버린 루즈벨트 지향하는 트루먼같은 대통령을 어찌 막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by | 2009/12/05 21:16 | 퍼온것 | 트랙백 | 덧글(0)





